신념대로 산 돼지

잘 못된 이야기( 有关 "错误的故事") (完)

traveler-kim 2023. 3. 17. 15:20

1977년 대학입시(高考)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나는 대학에 시험을 쳐서 들어기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전에는 추천으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사람이 시험을 쳐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믿었다.

그리고, 나도 시험을 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나는 "문화혁명" 전 소학교 일학년에 들어갔을 때부터 장장 10년 동안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나는 글을 아는 것 빼고는 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입시날까지 불과 6개월, 근본적으로 중고등학교 전과정을 보충하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짧았다. 여기 대하여,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보충 학습을 하는 것은 오직 대학 입시 시험장에  가기 위한 것이니, 어찌 되었든 문제만 맞추고 보자. 기왕 이렇게 된 거,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아예, 문제집을 직접 풀어보는 게 맞다.

결과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를 풀어보니 거의 모든 문제를 틀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정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소홀히 했나? 중고등학교 과정을 한 사람의 성인의 지력(智力)으로서, 추측해서 푼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이런 애매모호한 추측으로,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을 많이 생각해냈다.

정신없이 몇 달을 보내고 나자, 나중에는 뜻밖에 적지 않은 문제를 맞혔다.

고사장에 들어가자 나는 식은땀이 나고, 자신이 하나도 없었다 ----  도대체 내 추측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고, 그저 부처님의 자비심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 대목을 보면 틀림없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해에 합격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 라오 산지에(老三届: 문화 혁명전 1964~66년에 중학,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용맹을 떨쳤다는 무용담은 지긋지긋하다.

나도 분명히 합격했지만, 자랑할 가치가 있는 것은 결코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이 일에서 마음속에 아픈 기억만 품고 있다.

다른 사람은 고사장에서, 문제를 보니 모두 아는 것이라 기뻤다고 했다. 나도 문제를 보고, 모두 풀 수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자신이 하나도 없었다. 문제를  하나씩 풀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런 식으로 푸는 게, 도대체 맞는 건가?

모든 문제를 풀고 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삼십분쯤 일찍 답안지를 내고, 상갓집 개처럼 슬그머니 고사장을 빠져나왔다.

시험을 마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가 몇 점 받았을 수 있는지 말했지만 나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100점 맞은 것도 같고, 0점 맞은 것도 같고, 예상이 왔다 갔다 했다.

비록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는 매우 겁을 먹었고, 이후에는 감히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해의 수험생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처럼 자신 없어하지는 않았다. 어떤 수험생 친구가 고사장을 나올 때, 흥분하여 말했다. 문제를 모두 불었으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100점일 거야!

나중에 합격자 명단, 방 붙은 것을 보니, 그는 거의 빵점이었다. 이것은 다른 걸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오직 그의 시험문제에 대한 이해가 철저히 잘못되었다는 걸 설명해 준다.

다음에 말하는 사건은 해외 유학 중에 일어난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개, 내가 유학 갔다 온 것을 자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당연히 내 자랑거리라 할 수 없고, 한 가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비록 남한테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추호도 남을 불운을 재미있게 바라보지 않는다 ---- 내가 다니던 대학 철학과는 과학철학으로 유명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과학 철학은 물리학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철학과 교수들은 자기들이 현대 물리학 방면에서 깊은 수양이 되어있다고 자부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철학교수가 자기가 어떤 획기적인 발견 ----  그것도 이론물리학 상의 발견이라고 기뻐한 나머지, 사발통문을 보내 강좌를 들으러 오라고 초청했다. 관련되는 학과의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빠짐없이 초청되었다.

나도 갔는데,  분위가 고조되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는 들었으나, 무슨 일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들으면서 문득 보니, 청중 가운데 물리학과 교수가 느긋하게 파이프를 꺼내들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강의 마치기를 기다려,  파이프로 의자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Wrong story!(잘못된 이야기요)"라고 말하더니 바로 일어나 휘적휘적 나가버렸다. 기왕에 말하려는 것이 물리학이니, 물리학 교수의 의견이 당연히 맞다.

그 철학과 교수는 얼굴이 적갈색으로 변했고, 쥐구멍에라도 들어 걸어가지 못하는 것이 한인 것 같았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각양각색의 경험을 자랑하고 있다'라고.

그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그대로 말한다. 나는 일생 동안 각종 "wrong story"를 들어왔다.

이상한 것은, 잘못된 것이 도가 지나칠수록, 믿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다 ---- 이것은 모두 그것이 사람들을 가슴 벅차게 만들어 그런 것이다.

많이 듣다 보니, 나도 전문가 축에 들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들, 특히, "문화혁명" 중에 여러 가지 이상한 견해들은 나리와 인민을 재앙에 빠뜨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창작했다면 큰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이야기 마치기를 기다려, 담배 파이프로 의자 다리를 툭툭 치며 한마디 할 것이다.

"이건 이해를 철저히 잘못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