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나는 어떤 페미니스트인가?(我是哪一种女权主义者)

traveler-kim 2023. 3. 3. 20:20

 

우리 집사람은 여성학을 공부했고, 페미니스트 이론서를 많이 읽었다. 우리는 자주 각자의 입장에서 토론했다. 한 명의 인텔리로서, 우리는 페미니즘의 입장에 가까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여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인텔리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 이론 분야는 복잡하고 많은데(나는 이점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것이 중요할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간의 불평등은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것으로, 사회제도의 변혁이 있어야 해소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괸점은 서양에서는 단계론의 색깔을 일부 띠고 있으나, 중국은 이와 다르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나라(중국)는 현재 사회주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공산당은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정부는 여성의 사회보장을 중시하고 있고, 이 부문에서 이루어진 성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부족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서, 기업에서 인원 구조조정을 할 때, 많은 여직원들이 일자리를 강제 토 빼앗겼다. 만약 기업체 사장에게 책임을 지적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반문할 것이다. "당신은 왜 이 여직원들의 능력은 묻지 않는 거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신문, 잡지에 올랐고, 토론도 많이 벌어졌다.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의 생활은 오직 사회보장에만 기댈 수는 없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노력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사회보장이 많을수록 자신의 노력은 점점 감소되기도 한다.

마치 다른 페미니즘 분파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에 보장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자신이 약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건 작지 않은 실책이다.

사회주의 제도 아래, 남보다 많은 보장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움을 받는다 ---- 내가 젊었을 때, 모두들 국영기업 직원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최고의 보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장과 존엄은 완전히 다르다.

이와 관련된 문제: 우리나라에서 남녀는 평등한가?

이부문에는 한 가지 논쟁이 있다.

중국인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방면에서 벌써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의 여러 가지를 관찰한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한 개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개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문제로, 우리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를 과연 동등하게 대하나? 이 문제는 평론하기 어려운 성질이 있다.

모두 알겠지만, 필요할 때는, 위에서 각급 정부의 여성 간부 비율과 각급 인민 대표회의에서 여성 대표의 비율을 정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 95년 세계 여성대회 >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출판사들은 대대적으로 여류작가 특집을 출판했다. 이는 그녀들이 어떻게 대우해 주기를 바라든 그대로를 대우해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객관성을 상실했고, 토론할 것도 없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우리나라(중국)에서 여성의 실제 지위는 어떤가 하는 것이다. 그녀들 스스로의 능력, 성취, 정책 결정권의 장악 이런 것들을 과연 남성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데, 내 의견은 당연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여성차별은 많다 ----- 체육경기는 예외지만, 체육경기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틀에서 출발하여, 여성을 배려하는 쪽으로 나갔고, 여성에게 여러 가지를 분배해 주었다. 거기에는 여성이 대표가 되는 것도 포함된다.

나는 이런 배려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성취는 자기가 쟁취하는 것이지, 분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급진적인 페미니즘 관점도 있는데, 바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천성적으로 평화를 열렬히 사랑하고 생태환경에 관심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여성이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한다. 듣기로는, 여성의 오르가즘은 남성에 비해 훨씬 강열하고, 오래 지속되는데, 이것 역시 여성이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한다.

내가 의심하는 것은 이런 증거들의 진지함이다. 비록 여성은 자기의 성별을 열렬히 사랑하고, 찬미할 가치가 있지만, 지나치게 빠지면 안 된다. 사람은 임신할 때부터 남녀가 구분되는데, 나는 이런 차이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마 다른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런 차이를 보면, 바로 여기 우열 구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장사꾼 심리인데 ---- 여성으로 태어난 다는 것은 손해인 것 같아 보인다.

당연히 이런 기준에 맞추어, 중국인들은 장사꾼 기질이 많으니, 그들은 집요하게 남자아이를 바랐고, 이렇게 하는 것이 득이 된다고 생각했다.

장래의 인류는 남 이든 여든, 한 가지 성별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때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이 성별 구분이 있었다는 걸 알고, 가슴 아파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조금은 장사꾼이었던 것 같소."

당연히 우리가 있는 여기도, 몇몇 여인의 급진적 페미니즘의 풍모가 있고, 중국 말로 "공처가(气管炎)"라고 한다.

나 개인은 "공처가"는 중국 여성의 걸출한 패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심미의 각도이지, 세가 불리한 지 여부를 따져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장사꾼이라 생각하는데 ---- 당연히 이점은 다른 사람은 판단이 필요하다.

서양 페미니스트들에게, 성(性)은 페미니스트 이론에 의하면, 마르크스 이론에서의 노동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관점은 중국인들이 대단히 의외라고 보았다.

다시 몇 년을 보내고, 중국인들은 이런 생각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체득할 수 있었고, 현재의 조류는 여인들이 점점 더 성(性)의 이 범위 안으로 들어가 엮이게 되었다.

성은 인간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여성에게만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불평등하다.

서양 여성들은 자기가 이 범위 안에서 존엄을 상실했다고 여기는데, 이건 일리가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문화혁명"에서 중국 여성과 남자들은 머리카락 길이만 제외하고, 구별이 없었다. 존엄이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는 조금도 없다.

자유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들은 당연히 여성들의 환심을 사야 하고, 이렇게 해야 여성의 존엄이 회복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곧바로 존엄이 하나도 없고 재미가 하나도 없는 인물로 뽑히게 된다.

남자로서, 나는 차라리 이렇게라도 가장해서, 여성의 존엄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여성들이 다시 개미처럼 속박당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당연히 급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것은 또한 어둠을 버리고 광명으로 돌아서려는 결심이 생겼다고 볼 수 없다. 진정으로 결심했다면, 당연히 성전환수술을 받아야 하며, 적어도 거세라도 해야 한다.

우리 집사람은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이론에 심취했다.

이 이론은 언제나, 성별 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해독(解读) 방법을 제공하려고 한다. 나는 나는 매우 공감하여 말하는데, 과거의 사람이 성별 문제를 잘못 이해했다면, ---- 자고이래 인류는 거의 이해 성과 성별 문제에서 감정에 쏠리지 않는 평상심을 갖지 못했다. 처음에는 겉 보기에만 그럴싸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어느 정도 흐리멍덩해졌다가, 결국에는 하찮아졌다. 혹은 무지막지하게 ---- 이런 착오들을 주로 남성들이 범한다 ---- 이것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과 서로 가까운 점은 전혀 없다. 그런 철학자들, 미셸 후커(1926~1984: 프랑스 철학자)의 여제자들, 그녀들은 여기에 대하여 한 가지의 훨씬 큰 복잡하고 심오한 해독 방법을 갖고 있었다.

나는 중학 때부터 배우고자 했으나,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한 명의 남자로서, 나는 자유 페미니즘에 동의하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동체 의식에서, 나는 평상심을 얻을 수 있었으며, 다른 남자들에게 이런 생각을 추천하였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런 차이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어떤 성별의 사람이 다른 성별의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며, 어떤 성별의 사람이 뛰어나다는 의미도 이니다.

한 여지 아이가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당연히 남자아이와 똑같이, 필요한 일체를 찾을 권리가 있다. 만약에 그녀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는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 만약에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라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 1995년 제12기 < 건강 세계 > 잡지에 게재.

※ 95 베이징 세계 여성대회: 1995년 UN 주관으로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여성 회의를 말한다. 베이징 선언과 행동 강령이 채택되었는데, 여성은 보호 대상에서 남성의 사회적 동반자로 성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식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 페미니즘의 발전: 1세대 - 여성 참정권, 2세대 - 남녀평등, 3세대 - 성, 인종, 문화, 종교, 국적 등 정체성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