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대로 산 돼지

신념대로 산 돼지(一只特立独行的猪) 1/2

traveler-kim 2023. 2. 11. 15:46

 

인민공사 생산대에 들어갔을 때, 나는 돼지를 먹이고, 소를 방목했다.

만약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면, 이 두 종(种)의 동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완전히 알 것이다. 그들은 지유 자재로 땅에서 한가로이 돌아다니다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봄이 오면 사랑을 나누고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그들의 생활은 수준이 아주 낮아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와서, 그들의 생활을 개조했다.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모두의 생활에 테마(主題)가 생겨났다.

그들 중 대다수를 두고 말하자면,  이런 생활 주제는 매우 비참했다.

전자(소)의 주제는 일을 하는 것이고, 후자(돼지)의 주제는 살이 짜는 것이다. 나는 여기 무슨 원망할 만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당시 생활은 조금도 풍부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덟 가지 양판극(样板戏: 문화 대혁명 당시 유행했던 모범극)을 제외하면, 아무 소일거리도 없었다.

극소수의 돼지와 소들이 다르게 안배(安排) 되었다. 돼지를 예로 들면, 종돈(씨 돼지)과 모돈(어미돼지)은 먹는 것 말고, 또 다른 할 일이 있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이렇게 배치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종돈의 임무는 교배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종돈은 우리의 정책의 배려로 플레이보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기운이 다한 종돈은 왕왕 육돈(肉猪)으로 재배치되기도 했다. (육돈은 거세를 한다)

그들은 그제야  플레이보이 생활을 접고 정인군자(품행이 단정한 사람)의 자세가 되는데, 그들이 죽고 사는 것은 오직 암퇘지의 등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 데 달려있다.

모돈의 임무는 새끼를 낳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모돈은 새끼를 먹어버리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배치는 돼지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준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받아들인다. 돼지는 어쨌든 돼지니까.

생활에 대하여 갖가지 굴레를 씌우는 것은  인간의 독특한 품성이다.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굴레를 씌운디. 우리가 알기로는,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에서는 생활에 진작부터 굴레가 씌워져서, 사는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 목적은 남자의 경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가 되는 것이고, 여자는 출산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전자는 투계(싸움 닭) 같고, 후자는 모돈(어미 돼지) 같은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동물은 매우 특별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은들 무얼 어쩌겠는가?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을.

다음에 얘기하는 돼지는 보통 돼지와 달랐다.

내가 돼지를 먹일 때, 그놈은 벌써 네다섯 살이나 되었고, 직분으로 말하면 육 돈이었다. 하지만 까맣고, 삐쩍 마르게 자랐고, 두 눈은 번쩍번쩍 빛이 났다. 이 녀석은 산양같이 민첩해서, 일 미터 높이의 돼지우리 울타리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또 돼지우리 지붕에까지 뛰어 올라갈 수 있었으니 이 점은 고양이 같았다. 이 녀석은 곳곳을 어슬렁 어슬렁 한가로이 돌아다녔고, 근본적으로 우리에 있지 않았다. 모든 돼지를 먹이는 지청(知靑: 지식청년)들은 그 녀석을 사랑하는 자식 대하듯 했고, 그 녀석도 자식처럼 굴었다. 

녀석은 지청들에게 잘했기 때문에, 그들이 3미터 이내로 다가가는 것을 용인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튀었을 것이다다.

그놈은 수놈이라, 당연히 거세를 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이 시도해 보려고 하면, 설령 거세 칼을 뒤에다 감추고 간다 해도, 그놈은 바로 냄새를 맡고, 그를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면서 컹컹 울부짖었다.

나는 언제나 백미 속겨 끓인 죽을 그놈에게 먹였다. 그놈이 충분히 먹고 난 다음, 다시 속 겨에 들풀에 섞어서 다른 돼지들에게 먹였다. 다른 돼지들이 그걸  질투하여, 일제히 울어댔다.

이때 양돈장 전체가 처절한 울음 소리로 가득했지만, 나나 그놈이나 개의치 않았다. 배불리  먹고 나면, 그놈은 지붕에 뛰어 올라가 햇볕을 쬐던지, 각종 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그놈은 자동차 소리도 흉내 낼 줄 알았고, 트랙터 소리도 흉내 낼 줄 알았는데, 흉내도 거의 똑같이 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그림자도 안 보였는데, 추측건대 부근 촌락으로 암퇘지를 찾아간 것 같았다. 우리가 있는 여기도 암퇘지는 있지만, 우리 안에 갇혀서 과도한 출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타일이 없어지고, 또 더럽고, 냄새도 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놈은 그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안 보였다. 촌락에 있는 암퇘지는 조금 예뻤다.

그놈은 많은 뛰어난 업적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돼지를 친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은 몇 가지 안되어 차라리 쓰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모든 돼지치는 지청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놈의 소신껏 사는 위엄을 좋아했으며, 그놈이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놈이 못돼먹었다고 말했다. 지도자도 그놈을 몹시 미워했는데, 이점은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나는 그놈이 좋아 죽겠기에, ----- 그놈을 존경하여, 열댓 살의 나이를 헛먹은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자주 그놈을 "돼지 형"이라고 불렀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돼지 형은 여러 가지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놈이 사람 말도 흉내 내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 흉내를 낼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더욱 찬탄의 말을 쏫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한 것은 그놈 탓이 아니다. 사람과 돼지의 음색은 차이가 너무 크다.